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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한 날이었다. 유키는 그 날따라 몸이 달았고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더 폭발적으로 무언가를 갈구하는 제 몸을 하루종일 자제하느라 바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저에게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모든 방송국들이 평소보다도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유키는 티 내지 않았다. 오늘따라 몸이 발정났다는 이유로 제 역할을 다 해내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까. 애초에 아무도 유키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할 것일 뿐더러 호텔에 들어가고 나면 피에르가 있으니 그 이후로는 괜찮았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피에르, 유키의 사랑스러운 프랑스인 남자친구는 이미 그의 상태를 전부 눈치채고 있었다. 느낌에서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볼 때 조금 더 진득해져 있던 눈빛이라든가 호텔에 들어가고 나면 바로 제 방으로 와달라던 간절한 -그렇게까지 간절하진 않았으나 피에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부탁으로부터 미루어 볼 때 그랬다. 대충 유키 너 왜 이리 발랑 까졌어, 하는 말로 무마한 뒤 그 자리를 빠져나와 팀 공식 계정에 올라갈 미디어 컨텐츠를 촬영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해 지기만 할 뿐이었다.
저녁 10시 쯤 되었을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유키가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피에르는 제 짐을 풀러 잠시 본인의 방으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유키는 대충 가방을 침대 옆 소파 위에 올려다 두고 큰 한숨을 내쉬며 그 옆에 풀썩 앉는다. 그러고선 생각한다.
성욕을 풀고 싶을 때 항상 바로 옆에 파트너가 있다면 좋겠지... 성욕 뿐만 아니라 그냥 항상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니까, 이건 막연히 결혼하고 싶다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말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무언가를 원한다는 게 짐이 된다거나 어떤 요청이 된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거···
유키는 대충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냥 지금 기분이 아리까리 몽롱하고 뜨거워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 피에르가 보고 싶었다.
피에르가 유키의 방에 도착한 뒤에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물 흐르듯 지나갔다. 달뜬 호흡 소리. 째깍이는 벽 시계. 유키의 것인지 피에르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범벅이 되어 버린 타액과 끈적이는 무언가가 둘 사이에서 빠르게 흘렀다.
“유키... 오늘따라 몸이 왜 이리 들떴어?”
흥분한 상태로 피에르의 옷을 대신 벗겨주려는 유키를 제지하며 피에르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물론 그 질문에 유키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멍청한 프랑스인.
그리고 이내 장면은 빠르게 흘러간다. 침대 위에 누워 피에르의 것을 버겁게 받아내는 유키가 신음을 줄줄 내뱉었다. 피에르가 유키의 목덜미에 가볍게 키스하고, 유키 너 오늘 정말 사랑스럽다, 라는 말과 함께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유키는 그 얼굴을 차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낑낑댄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뜨거워서 머리가 녹아 버릴 것 같아. 피에르가 추삽질을 할 때마다 기분 좋다 못해 척추에 소름이 돋았다. 발 끝이 자꾸 움츠러 들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피에르, 피에르... 빨라, 조금만 천천히이, 천천히...”
“네가 하루종일 먼저 보챘으면서 그래...”
망할 프랑스인! 피에르는 봐주는 법이 없었다. 유키의 칭얼거림에 언제나 올곧은 태도로 굴었다. 그러더니 피에르는 오히려 팔에 힘을 살짝 풀어 상체에 힘을 싣고 유키에게 더욱 가깝게 붙여댔다. 유키의 흉통에 피에르의 턱이 닿았다. 피에르가 고개를 살짝 꺾어 유키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댔다.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몸 위로 체중이 실리자 숨을 쉬기 힘들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힉, 깊어, 좋아, 좋아...”
피에르가 속도를 더욱 높였다. 머리에서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정말 뇌가 녹는 것 같았다.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와중에 피에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유키를 빤히 내려다 보더니 이젠 유키의 어깨에 고개를 묻어 버렸다. 유키의 어깨부터 목덜미까지 잘근잘근 씹어댔다. 유키가 바르작 거리며 피에르의 뒤통수를 붙잡고 애원해 보려 했으나 나오는 말은 신음 뿐이어서, 결과적으로는 피에르의 귀에 직접적으로 신음을 내리 꽂아준 셈이 되었다.
“유키... 유키.”
보답이라는 듯이 피에르 또한 유키의 귀에 속삭이며 자신의 양손을 유키의 등 뒤로 옮겼다. 그러고선 움직이지 못하게 꽉 끌어안았다. 유키는 이제 온 몸이 바스라 질 것만 같다. 몸은 뜨겁고 속은 울렁거렸으며 머릿속엔 별이 떠다녔다. 피에르가 쾅쾅 내리 꽂을 때마다 아윽, 하는 소리와 함께 피에르의 뒤통수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앞에서 프리컴이 줄줄 새어 나왔다. 이러다가 녹아 사라지면 어쩌지.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분명 내 몸인데 내 맘대로 되질 않았다.
“피에르으, 피에르...”
“...유키. 유키, 아···”
...유키... 가슬리.
피에르가 유키의 귀에 속삭인다. 에? 유키에게서 바보 같은 소리가 튀어 나왔다. 반응이 재밌는지 피에르가 큭큭 웃으며 계속 반복했다. 유키 가슬리. 어때, 유키. 어울리는 것 같아? 답을 바라면서도 허릿짓은 멈추지 않는 피에르에 유키가 달뜬 신음과 호흡을 이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유키 가슬리... 나쁘지 않은데.
솔직히 혼자서도 생각해 본 적 있었다. 결혼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막연히 생각했다. 피에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도, 그저 나란히 누워 티비로 축구 경기를 시청할 때에도, 피에르와 처음 사귀게 된 그 날부터 지금까지 그저 일상의 여러 부분들에서 유키는 피에르와의 영원을 떠올렸다. 그러면 진짜 행복하겠지. 근데.
“...근데 내가 왜 가슬리야?”
“응? 그야 결혼하면 내 성을 받을 테니까...”
“아니, 네가, 피에르 츠노다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왜 당연히 내가 성을 뺏기는 거냐고. 네 망상 속에서 나는 이미 네 마누라야? 그리고 요즘은 무조건 여자가 남자 성 따르지도 않거든? 유키가 간신히 신음을 참으며 조목조목 내뱉었다. 먼저 결혼 얘기를 꺼낸 건 피에르인데 되려 유키가 더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그리고 유키의 반박에 피에르는 잠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다 소리내어 웃는다. 유키, 유키... 너 진짜.
“너 진짜 웃기다...”
“뭐, 뭐가 웃겨?”
“지금 내 밑에 깔려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다 반박하는 게. 그래, 그럼 내가 피에르 츠노다 하면 되는 거지?”
“아, 잠깐만 피에르으, 피에르 조금만 천천히이,”
피에르가 허릿짓에 박차를 가했다. 속 안이 잔뜩 채워지는 기분. 유키가 아래에 손을 넣으면 데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한계였다! 발 끝이 움츠러 들다 못해 양 다리에 힘이 빠졌다. 피에르는 마치 멀티 플레이어 같았다. 허릿짓의 속도를 한계까지 끌어 올리면서도 유키의 목덜미에 계속해서 키스했다. 양 손으로는 유키의 뒤통수부터 등까지 쓸어 내려줬다. 좋았지만 그 덕에 유키는 죽을 맛이었다. 좋은데 머리가 이상해 질 것 같아. 눈 앞이 하얘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차피 유키의 머리통이 피에르의 품 안에 파묻혀 있었기에 눈 앞은 그저 점멸을 반복하기만 할 뿐이었다. 피에르는 정말 미친 개였다!
행위가 막바지로 들어서자 피에르 또한 죽을 맛이었다. 피에르는 계속해서 유키를 껴안고 붙잡고 제 입술을 갖다댔다. 유키가 그 작은 몸으로 버둥거리면 소동물을 안아주듯이 유키의 몸을 꾹 눌러 껴안았다. 간혹 서로의 입에서 상대는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나 일본어가 툭툭 튀어나올 때도 있었는데, 피에르나 유키나 굳이 그게 무슨 의미냐 영어로 되물어보진 않았다. 당장 영어로 번역해 말할 시간이나 정신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키가 짧고 강렬한 신음과 함께 n번째 절정을 맞이했다. 동시에 몇 번 가지 않은 피에르 또한 유키의 몸을 단단히 포박한 채 낮은 신음을 흘리며 사정했다. 유키의 정신이 다시 돌아오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에르가 자신의 것을 천천히 빼내며 동시에 유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리곤 긴장이 풀렸는지 빠르게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유키의 상체 위로 엎어졌다. 아까는 제대로 못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명백히 유키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박자로 쿵쿵 거렸다. 확실히 평소보다 빠른 것 같았다. 그리고 피에르는 생각했다. 유키 먼저 씻기고 이불 정리 해놓은 뒤에 재워야지. 그 뒤에 나도 씻고 내일 허리 아프다 하면 줄 진통제도 챙겨 두고... 아 이거 진짜 결혼한 것 같잖아.
“유키... 유키.”
“왜, 왜애.”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피에르 츠노다보단 유키 가슬리가 좀 더 어감이 좋은 것 같아.”
“아, 아직도 그 소리야...”
“으응, 결혼할 거잖아. 아니야?”
“하긴 할, 건데. 우리 아빠가 이런 일은 예상 못 했겠지.”
“당연하지, 나 너희 부모님한테 사과 드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