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협회의 탑에 허락된 광원은 대체로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시야를 훌쩍 넘어서는 높이에 있는 탓에 종종 그 존재를 잊어버리기 일쑤인 창문이었다. 그 창문으로 비쳐드는 햇빛은 많은 경우 호수 위를 뒤덮은 우중충한 구름을 이미 한 차례 뚫고 들어온 것이어서, 이미 잿빛인 탑 안의 색채를 밝히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나마 초만은 부족함 없이 주어져서 탑 안을 노랗게 물들였다. 마법을 가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사치품으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책상이며 독서대며 천장의 커다란 샹들리에에 빼곡히 들어찬 채 흔들리는 노란 불빛을,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견습생들은 이따금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일이었다.
"왜 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거야? 여기 넘쳐나는 게 마법인데, 그거야말로 '사람을 섬기는 마법' 아니겠어?"
빈 촛대에 새 초를 꽂아넣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하던 중 견습생 동료가 불평한 적이 있었다. 다른 견습생이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들이 초가 네 마력보다 값싸다고 여기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네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긁어다가 써버렸을걸."
"암, 그러고도 남겠지. '다른 것까지' 쓰고 싶어 할지도 모르고."
앤더스가 동의했다. 값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다음 말은 굳이 내뱉지 않은 채로. 첫 번째 견습생이 다시 투덜댔다.
"불길이나 빛을 일으키는 마법 자체는 금지된 것도 아니잖아."
그것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마법사 협회에서 예배당의 정화의 화로를 유지하는 데에 마법을 제공하겠다는 제안마저 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성가회가 그것을 거절했다는 것도. '우리의 잘못을 기억하고 속죄하는 행위 없이는 화로의 불꽃에도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 종교 집단에서 대체로 고생을 사서 하는 행위를 높이 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성가회의 답변은 그러한 독실한 고집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멸시 또는 공포. 어느 쪽이든 마법에 대한 반응으로는 흔한 것이었다. 아마 그 경우에는 전자였겠지. 여기서는 후자, 또는 둘 다일 테고. 어느 쪽이든 결과는 비슷했다. 하지만 좀 더 나쁜 쪽이 있다면 보통 후자인데. 앤더스는 문득 스미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깨우는 바다를 휘젓는 폭풍이 캘런해드 호수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러나 그놈의 폭풍이 그 해만큼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수십 년 만의 비바람으로 배가 한참을 오지 않아 초가 담긴 상자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에도, 불을 밝히는 시간이 엄격히 정해지고 견습생에게 배급되던 초가 사라진 뒤로도, 마법을 사용한 불빛은 허락되지 않았다. 일찍 찾아와 늦게까지 이어지는 밤은 묵은 빵뿐인 식사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다. 낮에도 짙은 비구름과 빗줄기를 지나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얼마 되지 않았다. 줄어든 빛 속에서는 책 속으로 도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졌다. 마법에 큰 재능이 없는 견습생들도, 불이 꺼지지 않는 몇 안 되는 곳인 기도실을 밥먹듯 찾아가는 이들까지도 수업 시간을 전보다 간절히 기다렸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순간일지라도 밝은 섬광을 볼 수 있었으므로.
이건 멍청한 짓이야. 예의 견습생 한 명이 다시 투덜대기 시작했다. 앤더스보다 몇 살이 많다고 했던가. 귀족 가문 출신으로, 늦게 들어온 데에 비해 실력이 좋아 탑 생활은 길지 않은 편이었음에도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의 자신감도 상당 부분 그에 힘입은 것이었으리라. 적어도 그때까지는. 얼마 뒤 그는 별안간 사라지더니 며칠이 지나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침대 머리맡에 불을 켜 두고 책을 읽었다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허락받지 않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중죄였다. 앤더스는 그가 끌려가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 모습이 어땠을지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견습생의 얼굴도, 그를 붙잡은 성기사들의 얼굴도. 꿈 속에서 양쪽의 얼굴은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 좀처럼 구분되지 않았고, 그것이 깨어난 뒤의 마음을 더욱 노엽고 비참하게 했다. 그의 시험은 연기된 모양이었다. 그가 결국 어떻게 됐는지 앤더스는 기억하지 못한다. 첫 번째 탈출을 감행한 것이 그 얼마 뒤였기 때문이다.
그는 해를 향해 헤엄쳤다. 눈이 멀 것 같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이 가장 확실한 길잡이로 느껴졌다. 희게 타오르는 태양의 상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파랗게 빛났다.
독방에는 초가 없었다. 창은 있기도, 없기도 했다. 있더라도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이 고작이라 바람이 찬 날에는 없느니만 못했다. 벽돌 한두 개라도 아끼려다 보니 우연히 생긴 구멍일지도 몰랐다. 밀쳐지고, 끌어당겨지고, 얻어맞고, 묶이고, 마력 억제제를 투여당한 그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육체와 정신을 감싼 둔통 속에서 어둠을 바라보며 깜빡깜빡 졸았다. 손끝과 발끝에 감각이 찾아오고 희미하게나마 몸뚱이에 마력이 도는 것이 느껴지고 머리가 욱신댈지언정 지각이 돌아오기 시작할 때쯤 가까스로 눈을 뜨면 사방은 암흑이었다. 창문이 없기 때문이거나, 창문이 있더라도 한밤중이기 때문이거나. 그럴 때 그가 처음으로 하는 일은 작은 불꽃을 피워내는 것이었다. 그때만큼은 마법을 사용해 불을 켰다고 그를 처벌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피운 불빛은 창으로 들어오는 먹구름색 햇빛과도 노란 촛불과도 달랐다. 창백하고 따뜻한 색이었다.
앤더스는 눈을 감았다. 수면 위 태양의 잔상이 눈꺼풀 밑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그는 눈을 다시 뜨고, 한 번 더 불꽃을 피웠다. 색깔이 꽤 비슷했다.
안식자의 이마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태양의 낙인이 붉게 새겨져 있다.
앤더스는 자신이 어떻게 치료소로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안식자이든 아니든 피가 뜨겁고 비리고 끈적하고 미끈거렸으며 심장이 맥동하고 경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그렇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앤더스는 몇 번이고 무의식적으로 옷자락에 손을 문질렀다. 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만져 본 뺨은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좋게 말해도 말쑥하다고는 못했지만 피난민이라기엔 지나치게 잘 무장한, 즉 흔한 커크월의 잡배처럼 차려입은 호크라는 자는 예배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그들의 고향의 억양으로 그를 추궁했다. 그러나 그 의심의 중대함에 비하면 놀랍게도,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뿐 제공한 것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순순히 떠났다. 그의 동료들은 다른 생각임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앤더스가 쥐여 준 지도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에게는 변호할 기운도 항변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복수'가 모든 힘을 끌어가 연소시켜 버린 탓에 앤더스는 촛대 바닥에 붙은 타고 남은 심지처럼 가까스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의 안팎이 모두 끔찍하도록 고요했다. 그는 혼자였다. 마치 탈출 실패 직후의 독방에서처럼.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리린의 가게에서 일하는 아이였다. 그가 치료해준 기억이 있는 손에 기름통이 들려 있었다. 아이는 등불을 차례로 살펴보고는, 빈 곳에 기름을 붓고 꺼진 불을 다시 붙였다. 원료가 불분명한 기름은 이따금 타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겼지만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다. 이제 거진 빈 통을 든 아이가 머뭇거렸다.
"오늘 기름은 이것뿐이에요. 대신 내일 다시 올게요."
"괜찮아. 불은 나도 밝힐 수 있거든."
그는 손을 올려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꿈질대는 시늉을 해 보였다가 곧바로 후회했다.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습관적인 짐작과는 달리, 그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가 사뭇 결연한 표정으로 입술에 힘을 주었다.
"고작 그런 데에 힘을... 마법을 쓰실 필요 없어요. 불을 켜는 건 저도 할 수 있는 일인걸요."
필요 이상으로 결의에 찬 아이의 얼굴이 진지하기 짝이 없어서 앤더스는 웃지도 못하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으로 불을 밝히는 것은 여기에서도 여전히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 만류에는 묘하게 그의 가슴을 뜨뜻하게 채우는 지점이 있었다. 아이가 건네고 간 음식 꾸러미를 만지작거리며 앤더스는 그가 무릅쓴 것과 이곳 빈민가의 여러 사람들이 무릅쓴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일확천금을 위해서라기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무릅쓴 낯선 자를 생각했다. 그가 아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성기사와 싸울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 무슨 생각이었어?"
다음 번 호크가 찾아왔을 때, 앤더스는 돌아서려는 그에게 대고 불쑥 물었다. 딱히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실은 이제 와서 왜 이런 것을 묻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대로 그가 돌아서 떠나는 걸 원치 않았을지도. 호크는 멈춰서더니 오히려 되물었다.
"여길 찾아오려고 했을 때 리린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그는 앤더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등불이 밝혀진 곳을 찾으라고 하더군."
앤더스는 멈칫했다. 그가 예상할 수 있었을 종류의 안내는 아니었다.
"그건, 그렇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 않은데."
그의 얼빠진 얼굴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호크는 입술을 씰룩였다. 그 일견 사나운 인상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웃는다고, 그는 멍하니 생각한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그 양반이 이런 말도 하더군. '빈민가의 피난민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다'고. '정말 필요로 한다면, 그곳에 계실지어다.' 이런 소리도 했던 것 같은데? 나도 결국은 당신이 필요했으니까, 맞게 찾아올 수 있었던 거 아니겠어. 기도가 먹혔다고나 할까. 당신, 완전히 빈민가의 안드라스테 같은 존재거든."
빈민가의, 뭐? 앤더스가 얼굴을 찌푸린 순간 호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실은, 알고 보니 꽤 쓸 만한 안내였다고. 이 아래에서 저렇게 크고 둥근 등이 걸려 있는 곳은 한 군데뿐인 거 알고 있었어?"
호크는 문을 향해 대충 손가락질을 했다. 치료소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으나, 앤더스는 그제야 호크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았다. 잠시 후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호크는 떠나고 없었다.
그는 치료소 바깥으로 걸어나가 문 위에 걸린 두 개의 등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깜빡여 보았다. 두 개의 등이 금빛으로 빛나다가, 눈꺼풀 아래에서 밝고 푸른 잔상이 되었다. 그는 방금 만난 사람의 두 눈을 생각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빛을 생각했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로더링 예배당에서 수사와의 대화 중
